누운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컨셉프로젝트 1

어느 날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던 적이 있다. 그날의 풍경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머리를 받친 베개 뒤로 천장이 보였고, 그 천장에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형광등이 매달려 있었다. 딱히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그랬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죽는다면, 내가 마지막으로 보는 건 저 형광등일까?”

어떤 사람은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을 감는다. 어떤 사람은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 숨을 거둔다. 나는 그저, 하늘을 보고 싶었다.


병원 건축은 왜 늘 똑같을까

병원은 기능적인 공간이다. 동선이 명확해야 하고, 관리가 용이해야 하며, 안전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병실은 천장이 낮고, 직사각형이며, 창문은 작고 옆으로 나 있다. 침대에 누운 환자의 시야에는 천장과 조명만 보일 뿐이다. 하늘은 없다.

하지만 호스피스 병동은 다르다. 이곳에 입원한 사람은 더 이상 ‘회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치료의 가능성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람은 비로소 삶의 의미를 되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 남는 것은 하나다.

“내가 마지막으로 머무는 이 공간, 이대로 괜찮은가?”


호스피스는 죽음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삶을 마무리하는 곳이다

우리는 삶을 아름답게 살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한다. 집을 꾸미고, 옷을 고르고, 여행을 계획한다. 그런데 삶의 마지막 공간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무관심하다. 병원 침대와 무표정한 천장, 메마른 조명과 닫힌 창문. 이런 곳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호스피스 병동은 그저 조용한 방이 아니라, 삶의 문장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단락이 되어야 한다. 그 단락은 서둘러 넘기는 각주가 아니라, 가장 정성스럽게 다듬어야 할 본문이다. 그래서 나는 ‘누워 있는 자들을 위한 병동’을 상상해본다.


천장은 높아야 한다. 하늘이 들어올 수 있도록

이 병동의 병실은 천장이 높다. 보통의 병원보다 두 배는 높은 공간. 벽은 낮고, 천장은 위로 열려 있다. 그 틈으로 햇빛이 들어온다. 직접 비추는 강한 빛이 아니라, 유리와 천을 통해 부드럽게 걸러진 빛이다. 마치 오래된 산사(山寺)에서 문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처럼, 그 빛은 환자의 얼굴을 감싸고, 숨결을 어루만진다.

환자는 천장을 보며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 천장 너머에는 하늘이 있다. 이보다 더 평온한 작별이 있을까?


소천실 — 마지막 인사를 위한 공간

병동 깊숙한 곳, 가장 조용한 장소에 ‘소천실’이 있다. 말 그대로, 작은 이별의 방이다. 누구도 크게 말하지 않고,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 공간. 이곳에서 환자는 삶의 마지막 장면을 맞는다.

이 방은 독특하다. 완전한 원형이다. 사각형의 병실과는 다르다. 벽은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서로를 감싼다. 방 안에는 단 하나의 침대만 놓여 있다. 그 침대는 원의 정확한 중심에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열린 천장이 있다. 말하자면, 하늘이 바로 그 사람의 머리 위에 있다.

나는 이 방을 ‘시간의 원’이라 부른다. 출생에서 시작한 삶이 다시 원으로 돌아와, 중심에서 완성되는 곳. 죽음이 끝이 아니라 순환이라면, 이 방은 그 철학을 품은 공간이다.


왜 원형인가

건축에서 원형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직선은 방향을 지시한다. 입구와 출구, 시작과 끝이 명확하다. 하지만 원은 다르다. 출발점도 없고, 도착점도 없다. 단지 회전과 순환, 반복과 귀환만이 있다.

호스피스의 소천실이 원형이라는 것은 곧, 죽음이 소멸이 아니라 회귀라는 뜻이다. 물론 종교적인 신념과는 무관하다. 다만 이 공간을 설계하는 이로서, 나는 한 사람의 삶이 소모되지 않고, 되돌아오는 여운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건축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어떻게 죽는지는 다르다. 삶의 마지막 순간, 누군가는 응급실의 소란 속에서, 누군가는 차가운 기계음 속에서 사라진다. 그런 죽음은 너무 외롭다. 너무 기능적이다.

건축이 그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그건 단순한 디자인을 넘은 윤리의 영역이다.

높은 천장, 열린 하늘, 부드러운 곡선, 햇살 한 줄기.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런 공간은 속삭인다. “괜찮아.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남겨진 이들을 위한 자리도 필요하다

호스피스는 환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남겨질 사람들, 사랑하는 이를 보낸 사람들도 이곳에 머문다. 그래서 병실의 한쪽 벽은 열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작은 거실처럼 꾸며진 공간에는 소파가 있고,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환자의 마지막을 함께 지켜보는 이들도, ‘나도 이 시간의 일부였구나’라는 감정을 갖게 해야 한다. 그것이 죽음이 남긴 상처를 조금은 부드럽게 만든다.


마지막 순간, 하늘을 본다는 것

나는 여전히 그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하늘이라면, 얼마나 다행일까.”
그 하늘은 맑을 수도 있고, 흐릴 수도 있다. 해가 떠 있을 수도 있고, 구름이 흐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날씨가 아니다.

그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그 하늘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있다는 것.
그것이 이 병동의 가장 큰 가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문장 하나의 마침표

우리는 삶을 책처럼 읽는다. 매일 한 페이지씩 넘기며 앞을 향해 간다. 하지만 책은 끝이 있다고 해서 슬픈 것이 아니다. 그 끝에 좋은 문장 하나, 좋은 마침표 하나가 있다면, 그 책은 오래도록 기억된다.

호스피스 병동은 삶이라는 책의 마지막 장이다.
그리고 나는 이 병동이,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마무리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본 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답기를.

그 한 장면만으로도, 당신의 삶은 충분히 빛났다고 말해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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